4부. 실전 사례
4.4. 검증 환경 — 감사조서 하네스
AI에게 초안을 맡기되 그대로 믿지 않기 위해, 칸마다 권한을 색으로 나누고 인용 못 대면 못 쓰게 막는 환경을 짰습니다.
앞 사례에서는 이미 만들어진 재무제표를 검증했습니다. 코드가 합계를 다시 계산하고, AI는 그중 진짜 오류만 골라내는 구조였습니다.
이번에는 검증의 대상이 달라집니다. AI가 '직접 쓴' 조서 초안, 그 문장 자체를 검증하는 이야기입니다.
감사는 남이 만든 숫자를 그대로 믿지 않고 다시 짚는 일입니다. 그런데 그 조서를 이제 AI가 쓴다면, 저는 AI가 쓴 조서 역시 그대로 믿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원칙을 하나 세웠습니다. AI에게 초안을 맡기되, 절대 그대로 믿지 않는다.
이 원칙을 아예 환경으로 만든 것이, 4단계에서 개념으로 만난 하네스입니다. 이번에는 그 하네스를 감사조서 위에서 실제로 돌려 봅니다.
1. AI에게 조서를 맡기면 무엇이 걱정되나
감사조서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근거 없는 문장입니다. 조서의 한 줄 한 줄은 '무엇을 보고 이렇게 판단했는지'를 남기는 기록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AI는 근거가 없어도 그럴듯한 문장을 곧잘 지어냅니다. 읽으면 매끄러운데, 정작 그 판단을 뒷받침하는 자료가 어디에도 없는 문장입니다.
감사에서 이런 문장은 그냥 틀린 문장보다 위험합니다. 그럴듯해서 검토자마저 속기 쉽기 때문입니다.
걱정은 하나 더 있습니다. AI가 건드려서는 안 될 칸을 건드리는 것입니다.
조서에는 사람이 판단해 넣어야 할 칸, 코드가 계산해 채울 칸, AI가 서술할 칸이 뒤섞여 있습니다. AI가 제 자리가 아닌 칸까지 손대면, 검증의 기준선 자체가 흔들립니다.
감사는 근거가 생명이고, 각 칸의 주인이 정해져 있는 일입니다. AI에게 조서를 맡긴다는 건 이 두 가지가 동시에 걱정된다는 뜻입니다.
2. 그래서 조서 검토하듯 검증 환경을 짰다
먼저 조서의 정본을 엑셀이 아니라 텍스트로 옮겼습니다. 한공회 표준 감사조서를, AI가 채우기 좋은 텍스트 마스터로 가공한 것입니다.
텍스트가 정본이고, 엑셀 조서는 그 텍스트로부터 코드가 다시 만들어 내는 산출물입니다. 조서를 손으로 그리는 게 아니라, 텍스트를 고치면 조서가 재생성되는 구조입니다.
색이 곧 권한 경계
그다음 각 칸에 색을 입혔습니다. 이 색이 곧 권한의 경계입니다.
- 초록(서술): AI의 몫. 문장으로 풀어 써야 하는 칸입니다.
- 노랑(입력): 사람의 몫. 회사에서 받은 값을 사람이 넣는 칸입니다.
- 수식·연결·표준답안: 결정론의 몫. 코드가 계산하거나 정해진 답이 들어가는 칸입니다.
- 선택: 다시 사람의 몫. 판단으로 골라야 하는 칸입니다.
셀 채우기색이 역할을 정하고, 역할이 다시 '누가 처리하는가'를 결정론적으로 갈라 줍니다. 사람·AI·코드의 관할이 색으로 물리적으로 나뉘는 것입니다.

셀 채우기색이 사람·AI·코드의 관할을 물리적으로 가른다
초록 칸 밖은 못 건드린다
이제 AI 초안을 주입하는 장치에 안전선을 그었습니다. AI가 쓴 문장은 오직 초록 칸에만 들어갑니다.
주입기는 초록이 아닌 주소를 아예 거부합니다. 그리고 주입 전후를 대조해, 초록 외의 셀이 하나라도 바뀌면 그 자리에서 실패로 처리합니다.
인용 못 대면 안 쓴다
문장의 근거도 그냥 넘어가지 않습니다. AI는 조서 작성 지침(지식관리 MCP로 대 주는 근거)을 인용해 문장을 쓰되, 그 인용이 검증을 통과한 문장만 남깁니다.
인용을 대지 못하면 문장을 지어내지 않습니다. 대신 그 칸은 빈칸으로 두고, 비고에 사유를 남깁니다.
'인용 못 대면 안 쓴다'는 감사 실무의 원칙이, 여기서는 코드 규약이 된 것입니다.
숫자 쪽은 결정론이 지킵니다. 시산표는 '자산 + 비용 = 부채 + 자본 + 수익'의 차대가 맞아야 통과하고, 중요성이나 감사요약 같은 값은 한 번 정해 둔 데이터에서 조서로 자동 주입됩니다.
3. 사람이 손대도 대사가 맞아야 통과한다
여기서 새 문제가 생깁니다. 텍스트가 정본이라지만, 실제로는 사람이 엑셀 조서를 열어 직접 손보는 일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정본은 텍스트인데 수정은 엑셀에서 일어나면, 둘이 어긋납니다. 그대로 두면 다음 재빌드 때 사람이 고친 내용이 날아갑니다.
그래서 왕복(round-trip)이 맞아야 통과하게 했습니다. 사람이 엑셀에서 손댄 것을 텍스트로 되반영하고, 그 텍스트로 조서를 다시 빌드했을 때 결과가 같아야 한다는 규칙입니다.
엑셀에서 텍스트로, 텍스트에서 다시 엑셀로 — 한 바퀴 돌아 제자리로 오는지를 대사하는 것입니다.
이때 무엇을 비교할지가 중요합니다. 값·수식·역할색·메모·병합처럼 '내용'에 해당하는 것만 비교합니다.
테두리나 폰트 같은 장식은 비교하지 않습니다. 어차피 코드가 매번 다시 그리는 부분이라, 같은지 따질 대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한 바퀴 돌아 제자리로 오는지를 대사하고, 깨지면 커밋이 막힌다
그리고 이 대사를 커밋 직전에 한 번 더 자동으로 돌립니다. 조서 팩 전체를 다시 빌드해, 왕복 동등성이 어딘가에서 깨지지 않았는지 점검하는 게이트입니다.
이 게이트를 통과하지 못하면 커밋이 막힙니다. 검토자 서명이 없으면 조서가 마감되지 않는 것과 같은 자리입니다.
말하자면 이 게이트는, 제가 저 자신도 못 믿어서 세워 둔 자동 검토자입니다.
1부에서 통제 상실을 이야기하며 남겨 둔 숙제도 여기서 닫힙니다. 손댄 자리를 눈으로 좇는 대신, 어긋나면 통과하지 못하게 막아 두는 것입니다.
4. 결국 AI를 신뢰하되 검증한다
감사인은 검토자 서명을 하기 전에 숫자를 다시 대사합니다. 초안을 믿지 않아서가 아니라, 믿더라도 검증하는 것이 감사의 기본이기 때문입니다.
이 하네스가 하는 일이 정확히 그것입니다. AI가 낸 조서 초안을, 사람이 검토하듯 결정론 게이트로 자동 대사합니다.
판단은 AI가 하되, 그 결과가 넘어도 되는 선은 코드가 지킵니다.
반복은 결정론으로, 판단은 AI에게 — 그 판단을 조서라는 가장 엄격한 자리에서 검증까지 붙인 것입니다.
다만 솔직히 밝혀 둘 것이 있습니다. 지금은 이 골격과 파이프라인이 서 있고, 실제로 완성된 조서는 아직 일부(1100·1200·1300·2100 등)입니다.
나머지는 이 방식으로 하나씩 채워 가는 중입니다. '전 조서가 자동으로 검증된다'가 아니라, '검증되는 자리부터 조서를 늘려 간다'가 지금의 정직한 그림입니다.
여기까지가 4부, 실전 사례입니다. 서식을 닫고, 재무제표를 검증하고, 이제 AI가 쓴 조서까지 자동으로 대사하는 데 이르렀습니다.
세 사례를 관통하는 태도는 하나였습니다. AI를 좁은 자리에 앉히고, 그 자리를 코드가 지키게 하는 것입니다.
마지막 5부에서는 이 태도를 어떻게 계속 키워 갈지를 이야기합니다. 모르면 AI에게 묻고, 얻은 경험을 다시 나누는 방법으로 넘어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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